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해산된 이래 전국의 의병은 더욱 확대되었다. 이내원은 이 시기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는데 1908년 11월 연기우 의진에 참여하며 본격적인 항일투쟁에 나섰다.
1908년 7월 15일 연기우 의진의 의병 20여 명과 함께 무기를 휴대하고 장단군 소남면(小南面) 면장 김재혁(金在赫)에게서 군자금을 30원을 모집했다. 같은 달 28일에는 대남면(大南面) 김한원(金漢源)에게서 40원의 군자금을 모금 받았다.
1909년 음력 8월 2일 1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장단군 고남면의 김의경(金懿敬)의 차남에게서 200원의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같은 달 10일에는 장단군 장현내면 홍형규(洪鎣奎)에게 20원의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12월까지 연천군 계명리 마을에서 군수품으로 사용할 벼 122석을 모금했다.
이처럼 강원도 장단군과 연천군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약을 보이는 한편, 일본헌병대의 감시망도 점점 좁혀졌다. 그리하여 1910년 1월 29일에는 은닉하고 있던 화승총 1개와 칼 1개를 일본 헌병에게 압수당하였다.
1910년 5월 6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2년 12월 7일 징역 3년으로 감형되었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재판소:1910. 5. 6)
- 폭도(暴徒)에 관(關)한 편책(編冊)(경무국)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153~154면
- 한국독립운동사자료(국사편찬위원회, 1986) 제15권 12, 605면
- 한국독립운동사자료(국사편찬위원회, 1988) 제17권 38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