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9년 2월부터 전북 임실(任實)ㆍ남원(南原)ㆍ장수(長水) 등지에서 이석용의진(李錫庸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2년에도 이석용의진에서 활동하다 체포되어 두 번째 옥고를 치렀다.
전북 임실 출신의 이석용은 1908년 9월 성재 기삼연(奇參衍)이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를 결성하자 종사(從事)로 참여하여 전북 고창(高敞)에서 일본군 병참을 공격하였고, 용담(龍潭)에서는 김동신의진(金東臣義陣)과 합세하여 일본군과 접전하였다. 1908년 9월 임실전투(任實戰鬪)에서 패하여 의병진을 해산하고 유랑하다가 1913년 겨울 임실에서 체포된 뒤, 1914년 대구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이남용은 1909년 2월 21일부터 이석용의진에 참여하여 10일간 군수품을 운반하다가 체포되었다. 1909년 6월 2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2년 12월 17일 김필수(金必洙)ㆍ박보국(朴甫局)ㆍ한일성(韓日成) 등과 함께 이석용의진에 다시 들어가 전북 임실군 남면(南面) 야당리(野塘里)에 거주하는 공전영수원(公錢領收員) 강정수(姜正秀)로부터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13년 2월 22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이른바 강도상인(强盜傷人) 및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3월 2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1918년 10월 22일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光州地方法院 全州支部 : 1909. 6. 2)
- 判決文(光州地方法院 全州支廳 : 1913. 2. 22)
- 判決文(大邱覆審法院 : 1913. 3. 29)
- 刑事控訴事件簿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592~59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