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07년 일제에 의한 황제의 강제퇴위와 군대해산을 계기로 후기 의병이 일어나 전국적인 항쟁으로 이어졌다. 이에 이금옥은 1907년 음력 12월 중에 포천군 괴학리(槐壑里) 동장 원봉서(元奉西)에게서 20원, 그 부근인 석우리(石隅里) 이진사(李進士)에게서 100원, 지석촌(支石村) 이참봉(李參奉)에게서 50원, 그 부근인 가좌동(加座洞) 원경춘(元敬春)에게서 9원, 말미(末味) 이덕경(李德京)에게서 22원, 원경춘의 아들에게서 25원, 그 부근인 다대울(多大蔚) 성(成) 참봉에게서 20원, 같은 동리 김유복(金有福)에게서 14원, 마치리(麻治里) 이존위(李尊位)에게서 11원, 그 부근 동리인 고장미(高長味) 김선달(金先達)에게서 40원, 용상골(龍上谷) 전무투리(田無投里) 집에서 20원, 김문여(金文汝)에게서 20원의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그리고 1908년에는 정월 중에 포천군 제교리(祭橋里) 이고성(李高城)에게서 30원, 소광현(小廣峴) 이김해(李金海)에게서 30원, 그 부근인 접동(接洞) 원해성(元海成)에게서 30원, 양주군 삼가대(三加大) 안인수(安仁洙)에게서 30원, 포천군 정교(鼎橋) 조(趙) 선달에게서 20원, 그 부근인 화산 유귀암(柳貴岩)에게서 20원, 마치리에 있는 이모(李某)에게서 14원, 포천군 청량포(淸凉浦) 최도팔(崔道八)에게서 12원, 그 부근 박(朴) 선달에게서 14원, 그 부근 이(李) 선달에게서 5원을 군자금으로 모금하였다.
또 같은 해 2월 중에는 양주군 구루리(舊樓里) 임감역(林監役)에게서 9원, 회암(晦庵) 박지우(朴知宇)에게서 7원, 포천군 지석리 이(李) 진사 부친에게서 8원, 청량포 이백경(李白敬)에게서 50원, 양주군 모종리(毛宗里) 정백수(鄭伯洙)에게서 5원·옥양목 1필·짚신 10족·명주 1필, 지기올(知機㐚) 홍(洪) 선달에게서 60원의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하였다.
이금옥은 이처럼 의병항쟁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1908년 10월 2일 경성공소원(京城控訴院)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교수형을 받고 순국하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경성공소원:1908. 10. 2)
- 판결문(대심원:1908. 10. 20)
- 형사공소사건부(刑事控訴事件簿)
- 대한제국관보(大韓帝國官報)(1908. 11. 21)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67~6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