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경기도 과천(果川) 출신으로 1908년 과천·광주일원에서 윤치장의진(尹致章義陣)과 연명우의진(延明祐義陣)에 소속되어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윤치장은 경기도 광주(廣州) 출신으로 퇴역병이었다. 1907년 음력 10월 경 중군장 오사과(吳司果) 등 부하 70명과 함께 광주·과천 일원에서 활동하였다.
윤치장의진은 11월 20일 경 광주군 청계산(淸溪山)에서 일본 순사대와 교전하였고, 1907년 음력 12월경 광주군 목동에서 일본군 기병대와 접전을 치른 끝에 부하 8명을 잃었다. 1908년 음력 2월 중군장 오사과 외 2명으로 하여금 광주군 언주면(彦州面)에 사는 박승호(朴勝浩)에게서 군자금 100원을 모집하고, 그를 의병에 입대하도록 하였다. 또 박승호에게 돈 40원을 주어 경성(京城)에 가서 탄약을 구입해 오도록 명하였는데, 1908년 10월 11일 양주에서 체포되었다.
이경순은 1908년 정월 의병장 윤치장의진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또 의병장 연명우의 운량관(運糧官)이 되어 과천·광주 등지에서 군수전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연로한 어머니가 걱정되어 귀향했다 체포되었다.
이경순은 1908년 4월 초 1일 순사에게 체포되어 소위 내란죄(內亂罪)로 기소되어 1908년 7월 31일 평리원에서 유형 10년을 받고 고초를 겪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平理院:1908. 7. 31)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118~119면
- 朝鮮總督府官報(1910. 9.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