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경기도 파주(坡州) 출신으로 윤인순의진(尹仁淳義陣)에 참가하여 고양군(高陽
郡)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윤인순은 1908년 3월 경 의병장 허위(許蔿)가 결성한 관동창의원수부(關東倡義元帥府)의 우군장(右軍將)으로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해산병 출신의 선봉장 김
종운·참모장 홍원유·부장 노재훈 등으로 조직을 편성하여 부하 30~40명의 부
대를 이끌고 활동하였다. 주로 양주를 근거지로 파주·적성(赤城)·포천(抱川)·
영평(永平) 등지에서 일본군과 친일관리, 그리고 일진회 회원을 처단하는데 주
력하였다. 그리고 1909년에는 이은찬(李殷瓚)·정용대(鄭用大)·강기동(姜基東)·
연기우(延基羽) 등과 연합부대를 형성하여 경기도 양주·파주·포천·영평 등지
에서 활동하였다. 1909년 3월 17일 양주에서 삭령수비대(朔寧守備隊)와 전투 중
부하 16명과 함께 장렬히 전사하였다.
1908년 11월 9일 윤인순의 휘하에서 활동하던 윤치대는 서만춘(徐萬春)과 함
께 경기도 고양군(高陽郡) 사리대면(沙里大面) 사영동(沙英洞) 이치안(李致安)에
게 식량을 갹출하려다 실패하였고, 이어서 그 이웃인 정흥택(鄭興澤)의 집에서
도 동장 등을 소집하여 "의병용(義兵用)"이라 새긴 나무도장과 인명부를 제시하
고 이 동리의 쌀을 다른 데로 반출하지 말라고 명령하며 이를 징발하려 하였
다. 그러나 동민들에게 포박되어 고양주재소 순사들에게 인도되었다.
윤치대는 1908년 11월 28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소위 내란방조(內亂幇助)로
유형(流刑) 5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暴徒逮捕의 件(1908. 11. 20) 暴徒에 關한 編冊(警務局)
- 朝鮮總督府官報(1910. 9. 5)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5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