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전북 전주(全州) 사람이다.
1919년 당시 전주 이동면 화산리(伊東面 華山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전주읍내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는 동년 3월 13일 기독교측에서 거사를 주동하던 김가전(金嘉全)·윤건중(尹健重)·김종곤(金宗坤)·이수현(李守鉉) 등과 함께 학생들을 규합하여 태극기 및 선언서를 준비하여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이날 정오경 남문에서 울려 나오는 인경소리를 신호로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여 기독교·천도교인 및 학생들을 중심으로 주민을 규합하여 태극기와 선언서를 나누어주며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시위행진을 벌였다. 만세시위대열은 우편소 앞까지 이르렀는데 그는 이때 운동을 주도한 사람으로 지목되어 3월 26일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10월 18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선고받아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그후에도 그는 1930년 1월 25일 광주학생운동과 관련하여 붙잡혀 고문을 당하였고 1937년에는 전주시내 교회 지도자 등과 함께 일제로부터 소위 신사참배(神社參拜)를 강요당하였으나 끝내 거부하였으며 광복하기까지 소위 요시찰인(要視察人)으로 활동의 제약을 받았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紀全 70年史(全州紀全女子中·高等學校, 1974年 發行)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495面
- 判決文(1919. 10. 18 光州地方法院 全州支廳)
- 韓國獨立史(金承學) 下卷 291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