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함남 함흥(咸興) 사람이다.
홍태영(洪泰英) 의진에 가담하여 황해도, 경기도 일원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7월 일제는 「정미7조약(丁未7條約)」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이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켜 우리 민족의 무력을 말살하는 등 식민지화 정책을 가속화하여 갔다. 이에 분격하여 전국적으로 수많은 의병이 봉기하여 일본군에 본격적으로 저항하고, 일진회원을 비롯한 친일주구배들을 처단하여 무너져가는 국권을 회복코자 노력하였다.
위승환은 이 같은 시기인 1908년 2월 홍태영 의진에 투신하여 의병활동을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홍태영 의병장의지휘에 따라 황해도 서흥군(瑞興郡)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수차례 교전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오른손을 상실하여 불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계속해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의병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1909년 9월 서울 종로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징수하였다. 또한 같은 해 10월 11일에는 경기도 김포군(金浦郡) 고란대면에서 군자금을 징수하였다. 그러다가 붙잡혀 1909년 11월 9일 경성지방재판소를 거쳐 같은 달 29일 경성공소원에서 징역 2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을 공훈을 기리어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1집 316, 31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