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황해 해주(海州)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황해도 해주군 동운면(東雲面) 삼정리(參井里)에서 동지들을 규합하고, 군중을 지도하며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이후 독립사상을 고취하며 항일투쟁을 계속하였으나 일경의 감시와 추적으로 신변이 위험해지다 1920년 5월 상해(上海)로 망명하였다. 동년 7월 상해에서 대동단(大同團) 총재 김가진(金嘉鎭)을 만나 대동단에 가입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당시 대동단은 3·1독립운동 직후 한민족의 민족역량을 결집하여 민족적 대동단결과 실력양성을 표방하고 민족운동의 구심적 역할을 담당할 것을 목적으로 전 협(全協)·최익환(崔益煥) 등이 주도한 비밀결사였다. 동단은 황족·유림·종교·상공·노동·청년·군인·부인·보부상 등 전사회 각 계층의 인사들을 규합하려던 조직으로서, 주로 각종 인쇄물의 인쇄·배포 등을 통한 독립사상의 고취와 동단의 선전 및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대동단은 의친왕(義親王)을 상해로 망명시켜 망명정부를 세우고 제2의 독립만세시위를 추진하고자 하였다. 이에 그는 대동단의 지령을 받고 신현필(申鉉弼)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할 목적으로 귀국하였다. 그러나 군자금 모집활동을 펴던 중 그러한 사실이 일경에 탐지, 붙잡혀 1921년 7월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이에 불복·공소하였으나 , 징역 12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310면
- 조선일보(1921. 7.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