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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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한자 吳長卿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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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 2017 훈격 애족장
1907년 음력 9월 경기도(京畿道) 광주군(廣州郡)에서 임경제 의진(林景濟義陣)에 참여해 군자금을 모집하고 수직(守直)의 임무를 수행함.
1908년 1월 동군(同郡)에서 오학서(吳學西)등이 군자금을 모집하는데 길을 안내하는 등 활동하다 체포되어 유형(流刑) 15년을 받고 전남(全南) 완도(莞島)에 유배를 가 있던 중 1909년 6월 29일 의병 40여명을 따라 탈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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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07년 일제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파견한 고종황제의 특사를 문제 삼아 고종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황제를 즉위시켰다. 또한 정미7조약을 강제하여 국권을 강탈하였다. 이처럼 황제의 강제퇴위와 군대해산을 계기로 촉발된 후기의병은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무장력을 바탕으로 전국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오장경 역시 ‘강토를 되찾고 일본인과 전쟁하여 국권을 회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경기도 광주를 중심으로 항일 의병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는 1907년 음력 9월 29일 임경제의진에 참여했다. 70여 명의 의병과 함께 활동하던 중 궁촌(宮村) 안원칠(安元七)에게서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1908년 1월 5일에는 오학서 등과 함께 궁촌의 안익삼(安益三)에게서 군자금을 거두는 등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하였다.

오장경은 의병항쟁 중 체포되어 1908년 3월 25일 경기재판소(京畿裁判所)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종신 유형을 받았다. 1908년 4월 30일 평리원(平理院)에서 유형 15년으로 확정되었다. 그는 전라남도 완도군(莞島郡) 신지도(薪智島) 금곡면(金谷面)에 유배되었다. 1909년 6월 29일 의병 40여명을 만났으며 그들을 따라 탈주하였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경기재판소:1908. 3. 25)
  • 판결문(평리원:1908. 4. 30)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58~59면
  • 한국독립운동사자료(韓國獨立運動史資料)(국사편찬위원회, 1986) 제15권 98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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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오장경 - 경기 광주(廣州) -

수형기록

도움말
수형기록
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내란 유(流) 15년(원판결을 폐기함) 평리원 1908-04-30 국가기록원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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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안내
미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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