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7년 경북 안동(安東)ㆍ예안군(禮安郡) 일대에서 유시연의진(柳時淵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하면서 해산 군인을 중심으로 정미의병항쟁이 시작되었다. 당시 유시연은 강원ㆍ경북ㆍ충북 일대에서 명성을 떨치던 의병장 이강년(李康秊)이 합류를 요청하는 격서를 보내오자 부하 수십 명을 이끌고 삼척(三陟) 방면에서 이강년을 만났다. 그러나 당시 삼남토벌대장인 친일파 박두일(朴斗日:혹은 朴斗榮)의 계략으로 본진이 깨지자, 울진십이령(蔚珍十二嶺)에서 박두일을 사살하였다. 그 뒤 영양(英陽)ㆍ청송(靑松)ㆍ안동(安東) 등지에서 유격전으로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오봉칠은 1907년 6월에 유시연의진에 참여하여 같은 해 음력 11월 1일 수십 명의 의병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경북 예안군 안동하면(安東下面) 부포동(浮浦洞) 이명우(李命羽)에게서 40환을 군자금으로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8년 12월 25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5년을 받고 공소했지만, 1909년 2월 13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었다. 1909년 3월 3일 대심원에서 상고도 기각되어 옥고를 치르다 1913년 7월 25일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大邱地方裁判所 : 1908. 12. 25)
- 判決文(大邱控訴院 : 1909. 2. 13)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별집 제1권 481~482면
- 朝鮮總督府官報(1913. 8. 8)
- 刑事控訴事件簿
- 判決文(大審院 : 1909. 3.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