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09년 음력 3월부터 10월까지 전북 순창군(淳昌郡) 일대에서 최산흥의진(崔山興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순국하였다.
최산흥 의병장은 전북 순창 출신으로 1906년 10월부터 약 3년 동안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06년 10월 이경춘의진(李慶春義陣)의 도십장(都什長)으로 활동하다가 1907년 후반부터 이석용의진(李錫庸義陣)의 검찰(檢察)로 활약하였다. 1908년 중반에는 양윤숙의진(楊允淑義陣)의 중군장으로 활동했으며, 1909년 초반에 독립한 것으로 보인다.
최산흥의진에 참여하여 1909년 음력 3월 약 20명의 의병과 함께 전북 순창군 구암면(龜巖面) 산내리(山內里) 이장(里長)의 집에 들어가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였다. 같은 해 음력 9월 2일에는 전북 순창군 무림면(茂林面) 유토내(酉土內)에서, 같은 해 10월 1일에는 무림면 운정리(雲頂里)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10년 1월 21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 전주지부(全州支部)에서 이른바 강도죄 및 절도죄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같은 해 8월 23일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10. 1. 21)
- 合葬簿(全州刑務所, 1916)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88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