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전북 순창 출신으로 전북 일원에서 활동하던 김동구의진(金東九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활동을 지원하였다.
의병장 김동구는 1909년경 김막동(金莫同)·김상천(金祥千)·박치근(朴致根)·한자선(韓自先)·박화숙(朴化淑)·최석봉(崔石奉) 등과 함께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 대일 항전을 전개하였다. 김동구는 1909년 4월경부터 10월까지 전북 옥구(沃溝)·남원(南原)·임실(任實)·순창(淳昌)·태인(泰仁)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양창서는 의병장 김동구의 휘하에서 1909년 4월 22일 남원군 성남면(城南面) 유촌(柳村)의 임영조(林永朝)의 아들 임정규(林檉圭)를 납치하고, ‘군자금 1천 냥을 기부하라’고 협박하는 등의 군자금 모집 활동을 지원하다가 체포되었다. 1909년 7월 28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징역 3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별집1, 621면
- 대한제국기 호남의병 연구(홍영기, 2005) 529면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1909. 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