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9년 음력 6, 8월 전남 임실군(任實郡)에서 정성련의진(鄭成連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의병장 정성련은 1908년부터 1909년 3월경까지 전북 태인(泰仁)ㆍ금구(金溝)ㆍ임실(任實)ㆍ전주(全州) 등지에서 의병 30~40여 명을 거느리고 군수품의 모집과 밀고자 처벌 등의 활동을 하였다.
소윤명은 1909년 음력 6월 5일 밤 정성련 휘하 의병 15명과 총기를 휴대하고 전북 임실군 상신덕면(上新德面) 고치리(羔峙里) 서경량(徐京良)의 집에서 "우리들은 의병으로 군자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여 엽전 55냥을 군자금으로 모집하였다. 1909년 음력 8월 23일에는 김봉국(金鳳國) 외 3명과 함께, 임실군 하운면(下雲面) 유정리(鍮井里)에서 밀정 혐의를 받고 있던 최춘식(崔春植)과 홍문국(洪文國)을 태인군(泰仁郡) 호두산(虎頭山)으로 압송했다. 그리고 "너희들이 갈담헌병파견소(葛潭憲兵派遣所)에 우리들의 동정을 밀고한 까닭에 우리 동지 1인이 헌병에 체포되기에 이르렀으므로 그 복수로 너희 두 명을 살해할 것이다"하고 두 명을 묶어 곤봉으로 징치하고, 홍문국으로부터 엽전 25냥을 군자금으로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9년 3월 2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1912년 1월 25일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09. 3. 2)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844~845면
- 합장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