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09년 음력 9~10월 경기도 장단군(長湍郡)에서 이래원의진(李來元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07년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된 이후 1909년까지의 의병 활동은 전 민족적인 무력항쟁이었다. 1908년 10월에서 1909년 10월 사이에 경기 지역 의병을 주도하며 지속적인 활동을 보인 의병장은 김수민(金秀敏)ㆍ연기우(延基羽)ㆍ윤인순(尹仁淳)ㆍ이래원ㆍ이은찬(李殷贊)ㆍ정용대(鄭用大) 등이었다.
이래원은 김시경(金時京)과 함께 연기우 부대와 관련된 의병 지도층으로, 연기우는 강화진위대(江華鎭衛隊)에서 부교로 복무하였다. 이들은 1907년 군대 해산 이후 부하 60여 명을 거느리고 적성(積城)ㆍ철원(鐵原)ㆍ마전(麻田)ㆍ장단(長湍)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2월 이후 적성 방면에서, 1909년 8월 이후에는 철원ㆍ연천(蓮川) 등지를 중심으로 활약하였다.
성낙희는 이래원의진에 들어가 1909년 음력 9월 중 이래원 등 의병 10명과 함께 경기도 장단군 대남면(大南面)에서 군수품을 모집하였다. 그리고 1909년 음력 10월 14일에는 의병 9명과 함께 경기도 장단군 북면(北面) 반석리(盤石里) 좌수동(座水洞)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10년 4월 6일 경성지방재판소(京城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강도 및 살인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地方裁判所 : 1910. 4. 6)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156~15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