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남 평양(平壤) 사람이다.
대성(大成) 학교 졸업 후 의사가 되어 황해도 봉산(鳳山)에서 의료사업을 하던 중 1919년 한족회(韓族會) 파견원 홍원섭·한영일(韓榮一)과 만나 나석주(羅錫疇)·최호준(崔皓俊)·최세욱(崔世郁)·박정손(朴正孫)·김덕영(金德永) 등과 함께 황해도 사리원(沙里院)에 있는 나석주의 집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로 보내고 해외로부터 부로우닝 권총과 탄환 등을 구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할 것을 계획하였다.
1920년 1월 4일에 그는 김덕영·최호준·최세욱 등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황해도 사리원 시북리(市北里) 237번지에 사는 황해도의 부호 최병항(崔秉恒)의 집을 찾아가 군자금 630원을 모금하였다. 한편 최호준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북율면 진초리(北栗面進楚里)의 재산가 김정호의 집을 방문하여 군자금 출연을 권유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내용이 일경에 탐지되어 체포되었으며, 1921년 8월 16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5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5년 5월 18일 출옥후에는 만주로 망명하여 계속 독립운동에 헌신하다가 사망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62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0권 1219, 1221면
- 신분장지문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