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전(交戰) : 서로 병력을 가지고 전쟁을 함.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충북 괴산(槐山) 사람이다.
1926년 독립투사인 부친을 찾아 만주로 건너갔다. 1930년에 북만주(北滿洲)에서 결성된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에 입당하여 당원으로서 오상현지구당(五常縣地區黨)을 조직하고 선전책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그는 아버지 성인호(成仁浩)의 영향을 많이 받아 길림성(吉林省)의 문광학교(文光學校)에서 수학한 뒤, 그 즉시로 홍 진(洪震)과 이청천(李靑天)을 방문하고 독립전선에 일생을 바친다는 비범한 결의를 전달하여 선배 혁명투사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기도 하였다.
1932년 12월에는 이청천 휘하에서 중국 구국군(中國救國軍)과 합작하여 영안현(寧安縣)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여 많은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고 한다.
1933년 11월에는 중국 군관학교 낙양분교(洛陽分校)에 입학하여 중국인 군관들과 함께 군사훈련을 받았다. 특히 교과내용은 정치훈련과 전술에 치중하고 내무, 교양 관계의 학과도 겸하였다. 또한 교관으로는 북만의 독립군 총사령 이청천이 임명되었으며, 이범석(李範奭)이 훈련반의 학생대장으로 오광선(吳光鮮)이 학생반장으로 임명되는 등, 중국 관립기관에서 한국 독립군 장교를 양성하는 중요한 기관이었으며, 그는 1935년 4월 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오광선(吳光鮮)을 대장으로 하는 특동대(特動隊)를 조직하고 그는 참모로 활약하였다고 한다.
1938년에는 이청천의 밀령을 띠고 일제요인을 주살하기 위하여 하북성(河北省)에 파견되었으나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으며, 수년간 중국군에서 활동하다가 이후 만주 독립군을 재건하여 국내에 진입할 사명을 띠고 만주 부여현 삼차하(扶餘縣三 河)에서 은밀히 활동하던 중 광복을 맞이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사상정세시찰보고집 260 384면
- 사상정세시찰보고집(기2) 32면
- 본인일기장
- 조선통치사료(한국사료연구소) 50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6권 12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