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08년 음력 7월 함남 함흥군(咸興郡)에서 의병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07년 일제는 '헤이그밀사사건'을 구실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이어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로 해산하였다. 이후 의병 활동은 해산군인들의 합세로 무장력이 더욱 강화되고 의병의 사기진작으로 더욱 활발하게 일어나게 되었다.
함남 지역에서 활동하던 의병으로는 홍범도(洪範圖)ㆍ차도선(車道善)ㆍ이순보(李順甫)ㆍ조영환(趙永煥)ㆍ이춘실(李春實) 등이 있었다. 수렵에 종사하고 있던 송상봉(宋相鳳)은 1907년 11월 25일 홍범도 의병부대와 함께 함남 장진군(長津郡)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그 후 함흥군 관음방(觀音房)과 살치산을 근거로 활약하였다. 이 무렵 함흥에서는 김봉연(金鳳連)ㆍ김기연(金基淵)이 활동하였다.
군대해산 이후 의병운동이 전민족적으로 일어나던 때, 함흥군 오로촌(五老村) 장시에 사는 서기준은 1908년 음력 7월 의병 활동을 하다가 일병에게 체포되었다. 그의 처 오소사는 남편이 체포되었다는 것을 죽었다는 것으로 잘못 알고 약을 먹고 자결하였다. 서기준은 서울로 압송되어 옥고를 치렀다.
1908년 12월 21일 함흥지방재판소(咸興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내란죄(內亂罪)로 징역 10년을 받고 공소했지만, 1909년 3월 20일 공소 취하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大韓每日申報(1909. 2. 26)
- 刑事控訴事件簿
- 梅泉野錄(國史編纂委員會, 1955) 48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