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08년 곡산(谷山)·평남 성천(成川) 등지에서 의병진을 조직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8월 대한제국 군대 해산 이후 해산 군인이 의병에 합류함으로써 황해도와 평안도 일대 북부 지방 각처에서도 의병이 봉기하였다. 의병부대들은 여러 개의 소규모 부대로 분리되어 유격전을 전개하였는데, 박기섭의진(朴基燮義陣)·민효식의진(閔孝植義陣)·허덕천의진(許德川義陣)·이진룡의진(李鎭龍義陣)·지홍기의진(池洪基義陣)·연기우의진(延基羽義陣)·박장옥의진(朴長玉義陣) 등이 있었다.
1907년 8월 황해도 평산에서 창의한 박기섭의진은 중군장 우병렬(禹炳烈), 유격장 이진룡(李鎭龍)을 주축으로 황해도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의병장 박기섭 휘하의 독립된 의병부대는 민효식의진과 허덕천의진 등이 있었다. 이진룡의진은 1908년 말 강화도에서 온 지홍기의진, 황해도의 연기우의진과 연합하여 활동하였다. 그리고 박장옥의진은 1908년부터 1909년까지 황해도와 평안남도 성천(成川) 등지에서 독자적인 의병부대를 지휘하며 의병투쟁을 전개하였다.
서광도는 1908년 5월 30일 부하 수백 명을 인솔하여 평남 성천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고, 동년 음력 10월에는 평양에서 부하 나찬준(羅贊俊)을 시켜 일본군 헌병에게 피살된 동생 서광운(徐光雲)을 밀고한 이관술(李寬述)을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서광도는 박활삼(朴活三)·박장옥(朴長玉) 등과 연결하여 활동하다가 1909년 1월 23일 성천에서 체포되었다. 1909년 10월 4일 대심원에서 사형을 받아 10월 21일 평양감옥(平壤監獄)에서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3집 630면
- 韓國獨立運動史 資料13(國史編纂委員會) 義兵篇ⅵ 788면
- 폭도 수괴에 관한 조사 보고(1908. 12. 5) 暴徒에 關한 編冊
- 官報(1909. 10. 30) 4518號
- 判決文(大審院:1909. 10. 4)
- 日省錄(1909. 10.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