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북 의주(義州)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만세 시위에 참가한 후, 항상 조국광복의 염원을 품고 만주 관전현(寬甸縣)에 본부를 둔 광제청년단(廣濟靑年團)에 가입하였으며, 1921년 6월 국내에 진입한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의 동지들을 하광동(下廣洞)의 그의 집에 숨겼다가 일경 10여명의 습격을 받고 동지들은 교전후 다행히 피신하였으나 일경은 그의 집을 모두 소각하여 버렸다.
이에 그는 곧 만주로 건너가 광복군 총영에 가입하여 활동하던 중 선천군과 신의주역 폭탄 투척 및 밀정사살 등의 혐의로 일경의 추적을 받아 온 윤학승(尹學昇)·윤학소(尹學昭)와 함께 1926년 10월 중국 장춘(長春)에서 신의주경찰서 형사대에 체포되어 신의주로 압송되었다.
수년간의 재판 끝에 윤학소는 옥고를 인하여 옥사하고, 그는 1929년 3월 8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받고 미결기간이 통산되어 풀려났으나 계속 일경의 감시를 받았으며, 옥중에서 얻은 지병으로 고생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327면
- 동아일보(1926. 10. 15, 10. 26, 1928. 8. 25)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8권 277·537·89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584·586·59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