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북 영덕(盈德) 사람이다.
1906년 신돌석(申乭石) 의진에 참여하여 중군장(中軍將) 및 후군장(後軍將)으로 경북 영덕·청송·진보 등지를 무대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896년 영해의진(寧海義陣)의 중군장으로 의병을 일으켰던 신돌석은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1906년 3월 영덕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켰다. 신돌석 의진은 영해읍을 거쳐, 평해(平海)·울진(蔚珍) 등지에서 일본군을 공격하였다.
이때 백남수는 신돌석 의진에 중군장(中軍將)으로 참가하여, 같은 해 11월 일월산(日月山)·백암산(白岩山)·동대산(東大山) 등지로 의병의 근거지를 옮겨 다니면서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1907년 백남수는 김치헌(金致憲) 등과 함께 영덕 일대 지방민들의 절대적인 지원아래 진용을 증강하고, 영덕의 관서를 격파하는 등 기세를 떨쳤다. 그리하여 영동·영서에 주둔하는 일본군들은 신돌석 의병부대라는 말만 들어도 두려워하여 접근하지 못할 정도였다.
백남수는 신돌석 의병부대의 중군장으로 같은 해 9월 영양 주곡(注谷)에서 일본군 1종대(縱隊)와 격전을 벌인 것을 비롯해, 같은 해 10월 영해의 경무서를 격파하고 일경을 추방하는 등 크게 활약했다.
그런데 신돌석 의병장이 1908년 11월 18일 영덕 눌곡(訥谷)에서 피살 순국하자 의병부대도 해산되었으며, 백남수도 붙잡히고 말았다.
그는 이 일로 유형(流刑) 10년을 받아 고초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1907. 9. 4. 慶北裁判所)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427·428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1卷 393面
- 申乭石將軍實記(간행년도 미상) 11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