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9년 음력 1월 14일부터 2월 6일까지 전북 순창군(淳昌郡) 복흥면(福興面) 일대에서 김영엽의진(金永燁義陣)과 유종여의진(柳宗汝義陣)에 참여하여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의병장 김영엽은 1906년 의재(義齋) 정석면(鄭錫冕)과 함께 창의하였다. 그 뒤 신창영(申昌榮)이 복흥(福興) 산중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함께 활동하던 중, 신창영의 군사 반을 얻어 독자적으로 활동하였다. 1906년 성재(省齋) 기삼연(奇參衍)이 체포된 뒤, 그 휘하의 김공삼(金公三)ㆍ박도경(朴道京)과 합진하였으며, 다시 전해산의진(全海山義陣)과 합진하여 대치(大峙)에서 일본군과 교전을 벌였다. 그 후 전해산의진과 분진(分陣)하여 1908년에는 심남일의진(沈南一義陣)에 입진하여 장흥(長興)ㆍ강진(康津) 등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박홍석은 1909년 음력 1월 14일부터 음력 2월 6일까지 김영엽의진에 참여하여 순창군 복흥면 일원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2월 12일 이후부터는 유종여의진에서 활동하다 체포되었다.
1909년 10월 27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10개월여의 옥고를 치른 후 1910년 8월 대사령(大赦令)에 의하여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09. 10. 27)
- 受刑人名簿
- 暴徒搜索의 件(1909. 10. 26) 暴徒에 關한 編冊
- 暴徒大討伐의 件(1909. 11. 9) 暴徒에 關한 編冊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679~68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