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강원도 고성(高城) 사람이다.
1895년 12월경 여주·이천의병이 남한산성(南漢山城)을 중심으로 공방전을 벌이고 있을 때 민용호(閔龍鎬)가 이끄는 관동구군창의군(關東九郡倡義軍)은 강릉(江陵)을 중심으로 강원도 동해안 일대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민용호의 강릉의병은 개항장 원산(元山) 공략을 목표로 북정(北征)을 떠나 주문진(注文津)·양양(襄陽)·간성(杆城)을 지나 1896년 3월 9일(음력 1월 26일) 고성(高城)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그는 이때 고성의 영진(靈津) 포구에서 일본인 어부 4명을 체포하였다. 그 가운데 부상을 입은 1명은 14일 고성읍에서 사망하고, 나머지 3명을 3월 20일 강릉 방면으로 끌고 가 총살하여 처단한 후 민용호 휘하에 들어가 활약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강릉의병 휘하 고성유진장(高城留陣將)에 임명되어 항전을 벌였고, 3월에는 고성에서도 권형원과 그의 부하들이 의병활동을 이어갔다. 같은 해 6월 본진 강릉의병이 함경도 지역으로 북상함에 따라 그도 역시 을미의병(乙未義兵) 항전을 종식하게 되었다.
그 뒤 1907년 광무황제(光武皇帝) 강제퇴위와 군대해산을 계기로 의병이 전국적으로 확산, 격화되자 그도 의병항전을 재개하게 되었다. 1907년 10월 20일 그는 35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고성읍에 주둔하던 일본군 분견대를 공격하였다. 참호로 분산하여 방어하는 일본군과 5시간에 걸친 격전을 벌였다. 고성읍을 여러 방향으로 포위하여 기세를 올리던 의병진은 교전 끝에 퇴각하였고, 권형원은 10월 24일(음력 9월 18일)에 일본군에게 붙잡혀 총살당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은 잔인하게도 그 시신을 다시 단두(斷頭)하여 머리를 가져가는 만행을 저질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復齋集(閔龍鎬) 卷三 關東倡義錄 8面
- 權義士吊慰文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1卷 224∼232面
- 確認書(高城郡 杆城鄕校 典校)
- 權義士行狀
- 義兵運動史(金義煥) 39面
- 朝鮮各地暴徒蜂起의件 (1896.3.29)(『韓末義兵資料』3, 27面)
- 韓國駐箚軍戰鬪詳報의件 -《密受 제421호》(1907.11.22)(일본 방위성 방위연구소 소장)
- 박민영,「한말 고성 의병장 권형원의 의병투쟁과 단두 부전(釜煎) 수난」(한국독립운동사연구 55, 20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