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09년 음력 4월부터 10월까지 전북 임실(任實)ㆍ남원(南原)ㆍ태인군(泰仁郡) 등지에서 양윤숙의진(楊允淑義陣)ㆍ김동구의진(金東九義陣)에 참여하여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08년 초부터 호남 지역의 의병 활동이 크게 고조되어 1909년에 이르러 의병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일제는 군대와 경찰을 증파하여 호남의병을 진압하였다. 이에 맞서 당시 의병장들은 수십 명 단위의 소규모로 의진을 운용하며 유격전술로 맞섰다.
1909년 음력 4월 15일 김동구의진에 가담하여 전북 임실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당시 김막동(金莫同)ㆍ한자선(韓子先)ㆍ박화숙(朴化淑)ㆍ최석봉(崔石奉) 등과 함께 전북 임실ㆍ순창(淳昌)ㆍ남원ㆍ태인군 등지에서 활동을 하였다. 그 후 전북 순창 출신의 양윤숙의진으로 옮겨 활동하였다. 이 무렵 일제는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남한폭도대토벌작전이라는 대규모 군사작전을 실시했는데, 이 작전이 종료되던 시기인 1909년 10월 27일 남원경찰서에 체포되었다.
1909년 12월 1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 전주지부(全州支部)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1910년 칙령 제325호 대사령으로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暴徒搜索에 관한 件(1909. 11. 8), 暴徒大討伐의 件(1909. 11. 9) 暴徒에 關한 編冊(警務局)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09. 12. 1)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760~76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