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박중학은 전북 순창(淳昌) 출신으로 신보현의진(申保鉉義陣)과 이성화의진(李成化義陣)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1909년 4월 순창 일대에서 활동하고 있던 신보현의진은 이성화의진과 합세하였다. 이성화의진은 1908년 3월 고부(高阜)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고, 6월에는 정읍·태인·고부·순창 등지에서 군자금을 수습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군세를 확장하였다. 그리고 1909년 1월에는 6회, 2월에는 9회에 걸쳐 기습작전으로 일제기관을 공격하였다. 1909년 4월 신보현의진과 이성화의진은 합세하여 순창군 가포곡(加布谷) 일대에서 일본군과 접전을 벌였고, 5월 1일 태인군 인곡면(仁谷面), 5월 19일 고부군 벌말면(伐末面), 6월 20일 고부군 우덕면(優德面) 등지에서 일본 군경과 전투를 벌였다.
박중학은 1909년 음력 1월 신보현의진이 순창군 복흥면(福興面) 서정리(西亭里)에 진을 치고 있을 때, 일본군 토벌대의 동정을 제공하여 의병의 퇴각을 도와준 혐의로 동년 9월 7일 체포되었다. 1909년 10월 6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징역 3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國獨立運動史資料16 義兵篇ⅸ(國史編纂委員會), 121면
- 韓國獨立運動史資料15 義兵篇ⅷ(國史編纂委員會), 536~53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별집1, 647면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1909. 10.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