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광주(光州) 사람이다.
기우만(奇宇萬) 의진에 가담하여 호남 일원에서 활약하였다.
호남지방에서는 1895년 8월 명성황후(明成皇后)를 시해한 을미사변(乙未事變)의 변보(變報)를 전해 듣고 비분강개하여,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성재(省齋) 기삼연(奇參衍)·녹천(鹿泉) 고광순(高光洵) 등 유학자들은 원수를 갚고 나라를 구원하자는 논의를 하였다. 이 때 박원영도 비분강개함이 있었지만 거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해 11월 일제와 친일정권에 의해 단발령까지 강행되자 그에 반발하여 광주의 기우만과 장성의 기삼연이 각기 1896년 3월 의병을 일으키자, 그는 기우만 의진에 동참하였다.
기우만 의진은 광주향교에서 의병들을 모아 규칙을 정하고 전략을 의논하니 며칠 안에 의병의 형세가 매우 성대하게 되었다. 이 때 장성의 기삼연이 군사 3백 명을 거느리고 와서 군무를 자원하여 맡았다. 그리고 이웃의 나주에서는 주서(注書) 이학상(李鶴相)을 의병장에 추대하여 참서관 안종수(安宗洙)를 처단하였다.
이처럼 호남일대의 의병의 성세는 대단하였다. 그런데 진주로 출동한 관군이 호남으로 반격해 오면서 의병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그리하여 의병과 연락이 있던 담양군수 민종렬(閔種烈)이 붙잡혔고, 박원영도 이 때 붙잡혀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3집 33·3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