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함남 안변(安邊) 사람이다.
오영태(吳泳泰)·채응언(蔡應彦) 의진에 가담하여 경기, 황해도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고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한 일환으로 일제는 1904년 러시아와의 전쟁 도발 직후 곧바로 우리 정부를 강박하여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케 하고, 나아가 고문정치를 실시하였다. 이어 1905년 전쟁에서 승리하자 「을사륵약(乙巳勒約)」을 체결하는 한편 통감부를 설치하여 그들의 지배정책을 가속화시켰다. 더 나아가 1907년 헤이그 특사사건을 빌미로 광무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곧바로 군대해산을 강제하여 우리 민족의 무력을 박탈하였다. 이러한 국가존망의 위기에 전국 각처에서는 의병이 속속 봉기하여 일본군과 친일주구들을 처단함으로써 국권회복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박용집은 이같은 시기에 반일 의병투쟁을 전개하기 위하여 경술국치 직전인 1910년 음력 4월 오영태 의진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그는 이어 채응언 의진과 합류하여 42명의 동료 의병들과 더불어 같은 해 음력 6월 하순까지 전국 각지를 무대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채응언은 대한제국의 육군보병 부교(副校)로 복무하다가 1907년 군대해산 이후 의병에 투신하여 황해도, 평안도 일대를 무대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한 유명한 의병장이다.
특히 박용집은 경기도 이천군(伊川郡)의 수개 소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징발하고, 1910년 음력 6월 14일 밤 채응언 의병장 등 동지 50여 명과 함께 황해도 곡산군(谷山郡) 선암(仙岩) 헌병분견소를 습격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그곳의 친일 헌병보조원 이관수(李觀秀)를 처단하고 총기 12정과 총검·탄약 등을 노획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 소식을 듣고 출동한 일본군과 약 30분 정도 백병전을 벌여 일본군 상등병 중도삼랑(中島三郞)을 살해하는 등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전투에서 붙잡혀 1912년 5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2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1집 325·32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