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일제가 1907년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키면서 이에 항거하는 의병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전개되었다.
김동구 의병장은 김막동(金莫同) 등의 의병들과 함께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1909년 4월 22일 의병부대를 이끌고 전라북도 옥구군(沃溝郡) 성남면(城南面) 유촌(柳村)에서 군자금·군수품을 모집하였다. 6월 7일 김막동·김상천 등 2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전라북도 남원군(南原郡) 아산방(亞山坊) 석문동(石門洞)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같은 달 신정리(新亭里), 임실군 덕치면(德峙面) 원촌리(遠村里) 이장(里長) 집 등에서 군자금·군수품을 모집하였다.
박영렬은 김동구의진에 속하여 1909년 10월 24일 밤 김상천과 함께 임실군 하신덕면(下新德面) 물염리(勿梁里)에서 군자금·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9년 11월 24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 전주지부(全州支部)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받았다. 1912년 9월 13일 ‘은사(恩赦)에 관한 조서’에 의거 징역 3년 6월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1909. 11. 24)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771~77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