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7년부터 1910년까지 전북과 경남 등지에서 문태수의진(文泰洙義陣)과 전북 장수군(長水郡)에서 최익삼의진(崔益三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의병장 문태수는 1906년 지리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무주(茂朱)ㆍ장수 등지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격전을 벌여 적군 3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1907년 문태수의진은 전북 무주군 부남면(富南面) 고창곡(高昌谷)에서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여 적군 40여 명을 사살하고 총기 50여 정을 노획하는 등 큰 전공을 세웠다. 1907년 12월에는 서울진공작전을 전개하기 위하여 편성된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에 참여하여 호남창의대장(湖南倡義大將)으로 추대되었다. 그 후 1908년 4월 10일 신명선의진(申明善義陳)에 합세하여 의병 100명을 인솔하고 장수ㆍ용담(龍潭)ㆍ남원(南原) 등지에서 군청 등을 공격했다. 1908년 8~11월 충북 영동(永同)ㆍ청산(靑山)ㆍ옥천(沃川) 등지에서 활동하다 일본 경찰의 밀정과 격투 끝에 붙잡혀 대구감옥에서 순국하였다.
박순용은 1907년 음력 7월 14일부터 1910년 음력 1월 15일까지 문태수의 휘하에서 의병 1백 40~50명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전북 금산(錦山)ㆍ무주ㆍ용담ㆍ장수ㆍ진안ㆍ운봉(雲峰)ㆍ진산(珍山)ㆍ고산(高山)ㆍ전주(全州)ㆍ임실(任實), 경남 안의(安義)ㆍ함양(咸陽)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음력 8월에는 의병 약 150여 명과 함께 금산 읍내를 공격하여 우편취급소와 재무서 각 1동, 일본인 가옥 5동, 한인 가옥 4동을 불태웠으며, 일본인 3명을 사살했다. 1908년 음력 2월에도 관유(官有) 건물 2동, 민가 6동을 불태우고, 엽전 60냥을 군자금으로 모집하였다. 그리고 1910년 음력 2월 최익삼의진에 참여하여 전북 장수군 문천면(文川面) 옥자동(玉子洞)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10년 7월 1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ㆍ강도ㆍ살인ㆍ상인(傷人)ㆍ방화죄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10. 7. 1)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829~8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