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7년 경북ㆍ충북ㆍ강원 등지에서 이강년의진(李康秊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하면서 해산 군인을 중심으로 정미의병항쟁이 시작되었다. 당시 이강년은 1907년 7월 7일 제천(堤川)에서 일본군과 교전한 것을 비롯하여, 9월 16일 싸릿재, 9월 27일 죽령(竹嶺), 10월 5일 단양(丹陽) 고리평(故里坪), 10월 23일 풍기(豊基) 백자동(柏子洞)에서 전과를 올렸다. 이후 이인영(李麟榮)으로부터 경기도로 집결하라는 통문을 받고 경기도 건천(乾川)으로 진출하여 1908년 7월까지 충청도ㆍ강원도ㆍ경기도 일대에서 약 500명을 이끌고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박백현은 이강년이 의병을 다시 일으키자 1907년 음력 8월 1일 의진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100여 명의 의병과 함께 같은 해 음력 9월 하순까지 의병장 이강년의 지휘 아래 경북 문경군(聞慶郡)ㆍ용궁군(龍宮郡)ㆍ예천군(醴泉郡), 강원도 원주군(原州郡)ㆍ평강군(平康郡), 충북 충주군(忠州郡)ㆍ괴산군(槐山郡) 등지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9년 5월 17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3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15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大邱地方裁判所 : 1909. 5. 17)
- 判決文(大邱控訴院 : 1909. 6. 15)
- 刑事控訴事件簿
- 刑事第1審事件簿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472, 47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