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8년 음력 7월부터 10월까지 전북 흥덕(興德)ㆍ고창(高敞)ㆍ무장군(茂長郡)에서 박도경의진(朴道京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전북 고창 출신의 박도경은 1907년 9월 기삼연의진(奇參衍義陣)에 참여하여 종사(從事)ㆍ포사대장(砲射隊長)으로 활동하였다. 전남 장성(長城) 출신의 기삼연은 1896년 창의하고, 고종 황제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 이후 1907년 9월 전남 영광(靈光)에서 의병을 일으켜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를 결성하였다. 이후 무장ㆍ법성포(法聖浦)ㆍ고창ㆍ장성 등지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리며 의병진의 세력을 떨쳤다. 1908년 음력 1월 2일 기삼연이 순국한 뒤 그 부장들은 각기 독자적으로 의병진을 편성하여 활동하였다. 박도경은 호남창의회맹소의 흩어진 군사들을 수습하여 독자적인 의병진을 편성하고, 포사장(砲射將)으로서 인근의 의병부대와 필요에 따라 연합의진을 편성하였다. 1909년 4월 20일 부하 100여 명과 부안 상서면(上西面)에서 일본군 기병대와 교전 중 적에게 포위되어 의병진을 해산한 뒤 가협(加峽)에서 체포되었다. 1909년 12월 교수형을 받고 1910년 2월 8일 대구 감옥에서 자결하였다.
박명서는 1908년 음력 7월 30일 박도경의진에 들어가 같은 해 11월 27일 동료 의병 30여 명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전북 흥덕ㆍ고창ㆍ무장, 전남 장성ㆍ영광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음력 9월 10일 전북 무장군 원송면(元松面), 같은 해 음력 10월 28일에는 흥덕군 부안면(富安面)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었다.
1910년 4월 29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죄 및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10. 4. 29)
- 受刑人名簿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830~8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