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제천군 현우면(縣右面)에서 농업에 종사하던 중 이강년이 일제의 침략에 분노하여 의병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접하고 1907년 음력 8월 2일 그의 의진에 참여하였다. 음력 8월 14일까지 제천군・영월군・영춘군 일대에서 동지들과 함께 군자금 모집을 하였다. 같은 달 13~14일 영춘군에서 활동 중 대곡면 어의곡리(於衣谷里) 주민에게서 15원을 모금했다.
1909년 음력 9월에는 이강년 의진 중군장 정해창(鄭海昌)의 휘하로 들어가 활동했다. 당시 영춘군 일대를 다니면서 어상천면 태전리 이장에게서 신발 25족을 받았고, 기타 지역에서 다수의 신발과 음식물을 받는 등 군수품 조달에 힘쓰다가 체포되었다.
1910년 7월 22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내란죄’로 유배형 5년을 받았으나 국권이 피탈된 후 대사령(大赦令)에 따라 같은 해 8월 29일 경성공소원에서 원판결 취소 처분을 받아 방면되었다.
정부는 202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 : 1910. 7. 22)
- 판결문(判決文)(경성공소원 : 1910. 8. 29)
- 형사공소사건부(刑事控訴事件簿)
- 조선총독부 관보(朝鮮總督府 官報)(제7호 : 1910. 9. 5)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388~38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