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전북 장수(長水) 사람이다.
일제는 1907년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의 내정을 장악한 후 정규군인 진위대와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였다.
이와 같이 국망의 사태가 도래하자 박근오는 1909년 경 문태서(文泰瑞) 의병부대에 참가하여 장수·용담(龍潭)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문태서는 대한제국군의 하사출신으로 경남 안의(安義) 사람이나 을사조약에 반대하기 위하여 상경했다가,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기로 뜻을 세워 지리산에 들어가 거의하였다. 이후 문태서 의병부대는 장수·무주등지에서 활약하다가 서울진공작전에도 참가하였다. 박근오는 1909년 음력 7, 8월 경 문태서 의병부대에 입진(入陣)하여, 100여 명의 의병들과 함께 장수·용담 등지에서 일본군을 공격하는 등 활동하였다.
같은 해 10월 문태서 의병부대는 경부선 이원역(伊院驛)을 습격, 방화하고 일본군 3명을 포로로 포획하는 전과를 올리는 한편, 11월에는 무주군을 근거로 영동·옥천·청산·금산 등지에서 항일전투를 전개하여 일본군을 다수 사살하였는데 박근오도 이에 참여하였다.
그는 의병활동을 전개하던 중 일본군에 붙잡혀,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소위 폭동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832·833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