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남 강동(江東)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 직후에 여행렬(呂行烈)·김상만(金相萬)·주석환(朱錫煥) 등과 함께 만주로 건너가 국내에서의 항일활동 계획을 협의하고, 동년 11월에 유성삼(劉成三)과 함께 권총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1920년 3월 김석황(金錫璜)이 임시정부에서 특파되어 오자, 평양의 기홀병원(紀笏病院)에서 결사의용단을 조직하였다.
동년 5월 의용단 본부인 기홀병원에서 지부장 및 간부회의를 열고 무장투쟁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고, 같은 해 8월 3일 광복군총영에서 미국의원단 내한에 즈음하여 일대 무장시위를 전개할 목적으로 김영철(金榮哲)을 단장으로 하는 결사대 10여명이 특파되어 오자 이들과 더불어 평남도청, 평양시청, 평양경찰서 등을 폭파할 계획을 세웠다.
그는 여행렬과 함께 8월 3일 오후 9시 30분 평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졌으나 불발되고, 평양성 서쪽의 칠성문(七星門)으로 나아가다가 일경의 검문을 받게 되자 권총으로 중상을 입혀 5일 뒤에 절명하게 하였다. 또한 8월 20일 하오 6시경에는 평남경찰부장이 탄 자동차가 부벽루(浮碧樓) 앞을 지나게 되자 총격을 가하여 운전수를 부상시켰다.
동 8월 22일 오후 2시에 기홀병원에서 다음 거사계획을 구상하던 중 일경의 습격을 받고 체포되었다.
그는 1921년 2월 2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의 선고를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14·44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303·304·305·311·326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9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