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9년 음력 2월 20일부터 27일까지 전북 순창군(淳昌郡)에서 최산흥의진(崔山興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전북 순창 출신의 최산흥은 1906년 10월 이경춘(李慶春) 의병장의 휘하에서 태인(泰仁)ㆍ부안(扶安) 등지에서 활동하였으며, 1907년 7월부터 이석용(李錫庸) 의병장과 함께 임실(任實)ㆍ남원(南原)ㆍ진안(鎭安)ㆍ용담(龍潭) 등지에서 일군과 전투를 벌였다. 1908년 6월에는 양윤숙(楊允淑) 의병장의 중군장(中軍將)으로 임실ㆍ순창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고, 1908년 11월 초순 양윤숙 의병장의 지시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박가우는 1909년 음력 2월 20일 최산흥의진에 참여하여 같은 달 27일까지 의병 동료들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전북 순창군 일대에서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10년 1월 19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2년을 받고 7개월여의 옥고를 치른 뒤 1910년 8월 대사령(大赦令)에 의해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10. 1. 19)
- 受刑人名簿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837~83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