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민영팔은 충북 단양 출신으로 1907년 이명상(李明相)과 함께 이강년의진(李康秊義陣)에 참여하여 강원,충청도 일대에서 활약하였고, 1909년 4월 경 김상한의진(金商翰義陣)의 간부로 경북과 충북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그리고 1909년 5월부터 1910년 3월경까지 충주,단양 일원에서 약 20명의 의병부대를 이끄는 의병장으로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이강년은 1907년 3월 제천에서 봉기하여 강원,충청도와 경북 일원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이때 충북 단양 출신의 이명상은 을사늑약 이후 의병 투쟁을 결의하고 민영팔과 함께 창의한 뒤 이강년의진에 투신하였다. 이때 이명상이 이끄는 의병부대는 군사 이진하(李晉夏), 중군장 김규철(金奎哲), 좌군장 민영팔(閔泳八), 우군장 이영승(李榮承), 서기 이치정(李致鼎) 등으로 편성되어 있었다. 그 후 민영팔은 김상한의진에 투신하여 1909년 4월경까지 경상북도를 비롯하여 충청,강원도 일원에서 활동하였는데, 소모대장 이명상과 김상태, 좌익장 이춘삼(李春三), 우익장 원상선(元相善), 도령장 김성천(金聖天), 그리고 민영팔은 간부를 맡고 있었다.
1909년 5월부터 1910년 3월경까지 민영팔은 충주,단양 일원에서 약 20명의 의병부대를 이끄는 의병장으로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1909년 5월 24일 충주군 덕산면에서 곡암(曲岩),성암(城岩),성내리(城內里)에서 의병활동을 하던 중 일본군의 추격을 받고 문경 방면으로 피신하는 등 충청도와 경상도를 넘나들며 투쟁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雲岡先生倡義日錄
- 韓國獨立運動史 資料(國史編纂委員會) 14(義兵篇ⅶ) 299, 329면
- 韓國獨立運動史 資料(國史編纂委員會) 17(義兵篇ⅹ) 585면
- 독립신문(1920. 5.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