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9년 음력 4월부터 6월경까지 전북 부안군(扶安郡)ㆍ고부군(古阜郡)ㆍ흥덕군(興德郡) 등지에서 국동완의진(鞠東完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전남 장성 출신의 국동완은 1907년 정미의병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기삼연의진(奇參衍義陣)과 전기홍의진(全其泓義陣), 김영백의진(金永伯義陣)과 연계하여 약 40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활동하였다. 1908년 1월 전남 장성군(長城郡)과 광산군(光山郡)에서 일본군과 교전하고, 1909년 음력 4월 20일 흥덕군 은곡리(隱谷里)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문판석은 1909년 음력 4월 29일부터 국동완의진에서 군수품의 이동과 군수품 조달에 협력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6월 26일 고부군 성포면(聲浦面)에서 일본군 수색대에 체포되었다.
1909년 7월 23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전북의병사(전북향토문화연구회, 1992) 하권 550, 679면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09. 7. 23)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611~61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