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충북 보은(報恩) 사람이다.
한말 의병운동은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 특히 1909년 9월부터 10일까지 전개된 이른바 '남한대토벌작전'에 의해 쇠퇴하여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에도 국권회복 의지에 불타는 의병부대의 일부는 만주 노령으로 이주하여 의진을 재편한 후 국내 진공작전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의진을 해산하고 잠적하는 의병부대가 있는가 하면 일부는 포천(抱川) 연천(漣川)을 비롯한 추가령지구대, 태백산 소백산 등 산간 지대에서 유격전을 수행하면서 항일 투쟁을 계속하여 갔다.
이같은 시기인 1914년 8월 김운로(金雲老) 의병장은 일제를 구축하고 이완용(李完用)·박영효(朴泳孝) 등 친일 귀족들을 처단하기 위하여 재차 거의를 계획, 추진하였다. 맹선섭은 정운기(鄭雲淇)의 권유로 이 계획에 동참하여 동지를 규합하는 활동을 하다가 붙잡혔다. 그리하여 1915년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징역 3월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그 후 그는 일제 식민지하에서도 민족 독립을 모색하다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충북 보은(報恩)에서 독립 만세시위에 참가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일경에 붙잡혀 2개월 간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15. 3. 4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1집 410·411·415면
- 판결문(1915. 10. 11 경성복심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