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함남 정평(定平) 사람이다.
1919년 당시 정평군 부문면 풍양리(府門面 豊陽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원종집(元鍾潗)·윤화락(尹和洛)·노문표(盧文彪) 등과 함께 이 일대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정평군의 3·1독립운동은 기독교인에 의하여 점화되었다. 1919년 3월 5일 이들은 정평읍내에서 독립선언서를 받아 보고 전국 각지의 의거에 호응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뜻을 모았다. 거사일은 3월 7일 읍내 장날로 약정하고 태극기를 만들어 군중을 동원하는 방안을 찾아 힘썼다.
그는 3월 7일이 되자, 읍내 장터에 모인 3백여 명의 주민을 이끌고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후 4월 14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공소하여 5월 1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0월형을 선고받아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19. 5. 17 京城覆審法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686·687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997·998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