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8년 음력 9월과 1909년 음력 4월에 전북 용담군(龍潭郡)에서 문태수의진(文泰洙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의병장 문태수는 1906년 지리산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무주(茂朱)ㆍ장수(長水) 등지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격전을 벌여 3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1907년 문태수의진은 전북 무주 부남면(富南面) 고창곡(高昌谷)에서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여 40여 명을 사살하고 총기 50여 정을 노획하는 등 전공을 세웠다. 1907년 12월 서울진공작전을 전개하기 위하여 편성된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에 참여하여 호남창의대장(湖南倡義大將)으로 추대되었다. 그 후 1908년 4월 10일 신명선의진(申明善義陣)과 연합한 뒤, 의병 100명을 인솔하여 용담ㆍ남원(南原) 등지에서 일제 기관인 학교와 군청 등을 공격하고,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1908년 8월 이후 충북 영동(永同)ㆍ청산(靑山)ㆍ옥천(沃川) 등에서, 11월 이후 무주군을 근거로 금산(錦山)ㆍ상주(尙州)ㆍ청주(淸州)ㆍ보은(報恩)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도복렬은 문태수의진에 참여하여 1908년 음력 9월 6일 "총을 차출하라. 총의 차출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금전을 차출하라"는 취지로 문태수가 작성한 문서를 휴대하고 전북 용담 이남면(二南面) 신연리(新硯里)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1909년 음력 4월 20일에는 일남면(一南面) 갈거리(葛巨里) 등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10년 1월 19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10. 1. 19)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82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