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평북 신의주(新義州) 사람이다.
1919년 4월 신의주의 제일교회에서 목사로 재직하며 3·1독립운동을 주도하다가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수립에 참여하였으며, 동년 5월 23일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 대표인 여운형(呂運亨)이 파리로 갈 때에 한국민에 대한 일제의 탄압이 극심하다는 요지의 진술서를 작성하여 국제연맹(國際聯盟)과 만국장로교연합회(萬國長老敎聯合會) 등에 탁송하는데 참가하여 서명하였다.
1920년 2월 중국 상해의 프랑스조계 하비로(霞飛路) 팔선교(八仙橋)에 소재한 기독교 청소년회관에서 흥사단(興士團)대회에 참가하였다.
1920년초 임시정부 안동(安東)지역의 교통사무국원으로 파견되어 송병조(宋秉祚)와 함께 전단배부,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는 한편, 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에 가입하여 기관지의 편집부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 8월 태평양회의(太平洋會議) 외교후원회(外交後援會)의 제3회 총회에서 간사로 피선되어 동회 주간지인 ≪선전(宣傳)≫의 기자로 활동하였다.
1924년 3월 3일 안창호(安昌浩)와 함께 동명학원(東明學院)을 설립하여 젊은 세대들의 지식과 애국사상 교육에 정진하였다.
1931년 3월 안창호 등과 함께 공평사(公平社)를 설립하여 근대적인 협동조합을 운영하였으며 이를 통해 구급의무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33년 상해에서 흥사단 원동대회(遠東大會)가 개최되었을 때, 원동반(遠東班) 제2반장에 선출되었으며,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대회의 이사로서 활동하였으며 특무대장으로도 활동하였다.
1935년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 의원으로 김규식(金奎植)·윤기섭(尹琦燮) 등과 조국의 독립을 위해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9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 흥사단 50년사 43면
- 金九·安昌浩·金奎植 선생 일행과 함께 찍은 사진 4매
- 조선민족운동년감 5·17·46·79·151·152·265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25면
-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제3집 562·564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429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516면
- 임시정부의정원문서(국회도서관) 158·236·663·665·666·689·761·763·765·767·768·823·826면
- 민족독립투쟁사사료(해외편) 103·10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