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7년 강원도 평창(平昌)에서 민긍호의진(閔肯鎬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일제는 1907년 6월 헤이그특사를 빌미로 배일의식이 강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켜 한국 식민지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일제 통감부는 정미칠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한국통치권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나아가 군대해산을 단행하여 한국의 무장력을 해체하였다.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하면서 해산 군인을 중심으로 정미의병항쟁이 시작되었다. 당시 민긍호는 해산군인 등 3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원주(原州) 우편취급소와 일본 경찰을 공격하는 등 항일 투쟁에 나섰다. 1907년 8월 12일에는 여주(麗州)에서 1,000여 명의 의병을 모집하였고, 이강년(李康秊)과 함께 충주(忠州) 공격 계획을 세운 뒤 23일에 충주를 공격하였다. 그 뒤에도 9월 17일 홍천(洪川), 9월 23일 횡성(橫城) 봉복사(奉福寺), 10월 26일 횡성 둔촌(屯村), 11월 27일 홍천 양덕원(陽德院), 12월 8일 원주 작곡(鵲谷) 등지에서 격전을 벌여 전과를 거두었다.
남윤서는 1907년 음력 7월 1일 민긍호의진에 참여하여 총기를 휴대하고 평창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되었다.
1908년 11월 28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내란죄(內亂罪)로 유형(流刑) 5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地方裁判所 : 1908. 11. 28)
- 朝鮮總督府官報(1910. 9. 5)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23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