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북 구성(龜城) 사람이다.
1920년 5월 상해 임시정부 연통제(聯通制) 구성군(龜城郡) 참의(參議)에 임명되어 김형식(金亨湜)·장경전(張京展)·홍석천(洪錫天)·홍 식(洪植)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또한 1920년 1월, 만주에서 조직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하여 국내특파원으로 파견되었으며, 홍 식(洪植)·배준오(裵俊五) 등과 함께 평북일대에서 동년 8월까지 밀정처단, 군자금 모집, 단원 확보 등의 무장활동을 전개하였다.
동년 12월 대한독립단이 광복군사령부에 통합되자 이에 가입하여 김성엽(金聖燁)·이운봉(李運逢) 등과 함께 사령부 출장원으로서 의주(義州)·구성 등지에서 지방조직과 군자금 모집 활동을 계속하였다.
또한 최시흥(崔時興)·박응백(朴應伯)·박영찬(朴泳燦)·최윤희(崔允熙)·김세진(金世鎭)·김상옥(金尙玉)·김용택(金龍澤) 등과 함께 천마산대(天摩山隊)를 조직하여 부관으로서 활동하였다.
그는 각지의 청장년 500여명을 모집하여 재래식 무기인 화승총 및 적에게서 빼앗은 무기를 가지고 도내 각지를 왕래하며 유격전을 전개하여 적의 주재소, 경찰서, 면사무소 등을 습격하고 일제의 경찰·밀정들을 곳곳에서 처단하였다.
대표적인 예로서 1920년 6월 대원 20명을 이끌고 의주군 옥상면(玉尙面)주재소 및 면사무소를 습격한 사건을 들 수 있다. 그 밖에 동년 10월 삭주(朔州)경찰서 습격, 동년 12월의 창성군 대유동주재소 습격 등도 있다.
이렇게 활발히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중 체포되어 1921년 4월 1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여러차례의 감형으로 1930년 9월에 출옥하였으나 옥고의 여독으로 순국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동아일보(1921. 4. 20)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93·254·291·422·484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85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272·28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944면
- 조선민족운동년감 105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28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