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전라북도 전주(全州) 사람이다.
1919년 3월 14일 박상선(朴尙鮮)·최병태(崔炳台)·김경신(金敬)·김점쇠(金點釗)등과 전주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이곳은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선언서가 전달되면서 기독교도·천도교도 학생이 중심이 되어 만세시위를 계획하여, 전날인 3월 13일의 전주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한 바 있었다. 이 때문에 일본 경찰·헌병의 삼엄한 감시를 받고 있었다.
3월 14일, 이날도 전날에 계속하여 일본 경찰·수비대가 동원되어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오후 3시 3백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완산동(完山洞) 김제가도(金堤街道)를 출발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다가동 2가쪽으로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점차 시위군중이 늘어나자, 전날의 시위 때 체포된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점차 시위군중이 늘어나자, 전날의 시위 때 체포된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더욱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때 이를 진압하기 위하여 출동한 일본 경찰·수비대는 무력을 행사하여 시위군중을 강제로 해산시키고, 주동자를 검거하였다. 그는 이때에 체포되어, 이해 10월 9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49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484·148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