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함북 온성(穩城) 사람이다. 만주에서 활동하다가 청산리독립전쟁 이후 김학섭(金學燮)·강병관(姜秉官)·강석훈(姜錫勳) 등과 함께 노령으로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1921년 12월 노령의 시지미에서 대규모 군사행동이 불가능한 것을 깨닫고 이들은 국내 일본관청의 파괴와 일본주구의 암살, 기타의 직접행동만이 독립투쟁의 길이라고 확신하고, 임시대한독립군을 조직하였다. 대장에는 김학섭이 추대되고 15명의 대원으로 결사대를 조직하여 오소리강(烏蘇里江)을 건너 웅기(雄基)로 향하였다. 1922년 1월 2일 만주 혼춘현 홍룡구(琿春縣紅龍溝)에 도착하여 대안(對岸)의 경비상황을 조사하니 연초특별경계가 엄중하여 월경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서쪽 10여리 지점에 있는 신건원(新乾源)주재소를 습격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제1대와 제2대는 신건원수비대 양측 고지를 점령하고 제3대가 주재소를 공격하기로 하였다. 일경과 교전 40여분에 일경을 사살하고 주재소를 파괴한 후 전원이 두만강을 건너갔다. 그러나 그는 이 전투에서 일경의 총탄을 맞고 전사하였다. 이후 이때의 동지들도 혼춘일영사관 경찰에 모두 체포되었으며, 김학섭·문창학 등은 사형선고를 받고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93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90·391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97·98면
- 동아일보(1923. 6. 2, 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