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경기도 양주(楊州) 사람이다.
1919년 11월 남만주에 본부를 두고 있던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의 서울지부를 설치하기 위해서 김기한(金起漢)·이 섬(李暹)·홍영준(洪永俊)·정순영(鄭舜永)·송내호(宋乃浩)·이주호(李周浩)·정무순(鄭武淳)·안흥기(安興基) 등과 함께 격고문(擊告文), 사형선고장(死刑宣告狀), 영수증(領收證) 등을 인쇄·배포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발각되어 동지들은 모두 실형을 받았으나, 그는 도피하여 궐석재판에서 징역 4년형을 받았다.
그는 1921년 4월 함흥에서 김유성(金有聲)·이범대(李範大) 등과 해동(海東)불교청년회를 조직하고 다시 군자금을 모집하여 만주 관전현 왕보석(王寶石)에 있는 대한독립단에 제공할 목적으로 그는 '독립군 환영단장'의 직책을 맡고 활동하다가 체포되기도 하였다.
이후 만주로 건너가 활동하였으며, 1928년에 공소시효가 소멸된 것으로 알고 다시 국내에 들어왔다가 일경에게 체포되었다.
1928년 3월 29일 그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는 등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492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8권 776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88면
- 동아일보(1921. 7. 3, 1922. 4. 17, 1928. 3. 20, 3. 23, 3. 30)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1권 분책 498·502·50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0권 1068∼108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