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10년 12월경 경기도 포천군(抱川郡)ㆍ가평군(加平郡)ㆍ영평군(永平郡) 등지에서 강기동의진(姜基東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강기동은 헌병보조원 출신으로 이은찬의진(李殷瓚義陣)에 들어가 선봉장으로 활동하였다. 1909년 3월 이은찬이 체포되자 창의원수부(倡義元帥府) 중군장으로 활동하며 양주군(楊州郡)ㆍ포천군ㆍ가평군ㆍ영평군 등지에서 일군(日軍)과 수십 차례 격전을 펼쳤다. 강기동의진은 1909년 남한대토벌(南漢大討伐) 이후 임진강 유역과 경기 북부 지역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한 의병부대로서 1909년 9월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활동하였다. 강기동은 연기우의진(延基羽義陳) 또는 원수부 소속 부장들과 연합작전을 펼치면서 일제 경찰과 전투를 벌이다가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김응선은 1910년 12월경 강기동의진에 들어가 경기도 포천군ㆍ가평군ㆍ영평군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같은 달 20일경 경기도 양주군 현내면(縣內面) 귀평리(歸坪里)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었다.
1911년 5월 5일 경성지방재판소(京城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강도미득재(强盜未得財) 및 강도죄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京城地方裁判所 : 1911. 5. 5)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175, 17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