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서울 사람이다. 1919년 5월 김상옥(金相玉)·한우석(韓禹錫) 등이 조직한 혁신단(革新團)에 가입하여 항일활동을 폈다. 당시 19세의 어린 나이를 이용하여 조직의 밀회연락(密會連絡)을 담당하였으며, 혁신단의 기관지인 〈혁신공보(革新公報)〉인쇄, 살포하는 책임을 맡았다. 혁신단은 동년 12월에 암살단(暗殺團)으로 명칭을 바꾸고 조직을 확대하였으며, 조선총독을 비롯한 일인고관의 처단할 계획하였다. 따라서 그도 단원들과 함께 무장투쟁을 위해 삼선(三仙)벌판에서 권총사격 연습을 하였으며, 암살단의 취지서와 일제관리 및 친일분자에 대한 경고문을 인쇄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김상옥·한우석·김동순(金東淳) 등과 함께 1920년 8월 24일 미국의원단의 방한에 맞추어 총독처단을 계획하였으나 실패하고 한우석과 함께 붙잡혀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 계속 동지들과 활동하던 중 1923년 1월 24일 김상옥이 종로(鐘路) 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사건으로 다시 붙잡혀 종로경찰서에서 3개월간 가혹한 고문을 당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92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9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342·36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0권 1041-1043·1046-1049·1053·1061·1065면
- 동아일보(1920. 9. 22)
- 매일신보(1920. 9.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