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07년 음력 12월부터 1909년 2월까지 경기도 양주군(楊州郡)과 포천군(抱川郡) 등지에서 황재호의진(黃在浩義陣)에 들어가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07년 일제에 의해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자, 대한제국 군대 보병 하사였던 황재호는 양주군의 관포군(官砲軍) 부장 황순일(黃淳一)과 함께 1907년 9월 김인성을 소모관(召募官)으로 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1907년 음력 7월 허위(許蔿)는 양주군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농민 출신 윤인순(尹仁淳)을 부장으로 하고, 황순일ㆍ황재호 부대를 규합하였다. 1908년 8월 20일 이후 윤인순은 황재호 부대와 함께 양주군ㆍ포천군ㆍ파주군(坡州郡) 등지에서 일본군 수비대, 경찰서 등을 공격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김수동은 1907년 음력 12월 10일부터 1909년 2월 7일까지 황재호의진에 들어가 의병 13명과 함께 활동하였다. 1908년 음력 1월 10일경 경기도 포천군 외소면(外所面) 상송우(上松隅) 시장, 1월 말경 경기도 양주군 고주내면(古州內面) 고읍리(古邑里)에서 군수품과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10년 6월 15일 경성지방재판소(京城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12년 9월 13일 대사령으로 형 집행을 면제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地方裁判所 : 1910. 6. 15)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16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