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함남 안변군(安邊郡) 영풍면(永豊面) 하리(下里) 상취암(上鷲岩)에 거주하였다. 1908년 채응언의진(蔡應彦義陣)에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이른바 남한대토벌작전(1909. 9. 1~1909. 10. 10) 이후 의병투쟁은 경상북도 소백산·일월산 일대와 황해도 일대에서 지속되었는데, 황해도 일대에는 이진룡(李鎭龍)·김정언(金貞彦)·한정만(韓貞萬)·채응언 등이 치열한 항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 중 이진룡 휘하의 부장 채응언은 1907년 이후 황해도 안평(安平)·수안(遂安) 등지에서 순사주재소와 헌병분견소를 습격하여 일본 헌병을 사살하고 무기를 노획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채응언은 1910년 국권상실 이후에도 의병활동을 지속하여, 1910년 4월 강원도 이천군(伊川郡) 가려헌병분견소 습격, 1910년 6월 강원도 이천군에서 강두필(姜斗弼)과 헌병 및 헌병보조원 사살, 그리고 1913년 6월 황해도 대동리(大洞里) 헌병분견소 습격 등 지속적인 항전을 전개하였다. 1915년 7월 5일 평남 성천(城川)에서 유격전을 전개하던 중 체포되어 동년 10월 평양감옥에서 순국하였다.
김복록은 1908년 음력 4월 채응언의진에 참여하여 황해도 곡산(谷山)·함남 안변 (安邊)일대에서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1912년 음력 4월 체포되었다. 1912년 6월 1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0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12. 6. 10)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별집 제1권, 326~3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