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남규진은 면암 최익현의 제자로 최익현으로부터 대중을 격려하여 하루 속히 군사를 일으키라는 조언을 들어 의병에 투신하고자 하였다. 이로써 남규진은 을사늑약 이후 민종식·이용규·유준근(柳濬根)·이식(李植) 등과 함께 항일을 위한 의병을 일으킬 것을 계획하고 추진하였다. 이를 위해 민종식이 가산을 판 돈 2천 원을 군자금으로 활용해 군수품을 마련하고 함께 거병한 남규진 등과 1906년 3월 홍주성에 진입해 총기와 탄약을 약탈하려고 계획하였다. 그러나 사전에 발각되어 이미 성안으로 수송한 총기를 압수당하자, 의병을 일시 해산하고자 했으나 경찰과 헌병이 쳐들어와 겨우 몸을 피하였다.
이후 보령군과 결성군(結城郡)을 거쳐 홍주성에 진공했을 때는 일본 헌병과 교전한 끝에 홍주성을 점령하고 총기, 탄약과 기타 무기류를 노획하고 우편국에서 군자금을 확보하였다. 당시 함께 했던 의병은 2백 명에 달하였다. 또 홍주성 농성 과정에서 인근의 각 군수에게 명령하여 양식과 군기의 징집 및 모병의 일을 주선하여 해미 군수로부터 포군 10명과 금(金) 약간을 모금하였다. 하지만 1906년 5월 31일 홍주성에서 벌어진 대혈전에서 패배할 때 이식·유준근·신현두(申玄斗)·이상두(李相斗)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후 최익현이 대마도로 유배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순국하자 신보균과 함께 집사(執事)를 맡아 장례를 준비하였다.
1906년 5월 31일 체포되어 대마도로 유배형을 받았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고종실록(1907.7.3)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집 57, 58, 134, 137, 176, 222, 299, 300, 729, 758, 790, 81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집 2, 97, 98, 99, 105, 115, 118, 119, 127, 133, 134, 139, 140, 141, 148, 153, 168, 170, 175, 179, 861, 862, 863, 866, 867, 870, 871, 873, 874, 877, 882, 88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339면
- 주한일본공사관기록・통감부문서(국사편찬위원회, 1993) 제8권 297면
- 한국사료총서(국사편찬위원회, 1994) 제1집 386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제1권 359, 360, 372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8권 1070면
- 독립운동사 사전(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4)
- 「한말 예산지역의 의병투쟁」(박민영, 충청문화연구,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2012) 110~112, 118, 122, 124~125, 129면